작년 여름방학엔 친구 한 명과 자전거 여행을 갔었지요. 제가 가는 여행 중 태반이 그렇듯이, 이것도 급조된 여행이었습니다. '자전거 여행 콜?'이란 전화에 낚여 아무 생각없이 '콜'을 외친 게 모든 재앙의 시작...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이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것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자전거

물론 자전거가 있어야 하죠. 전 자전거가 없어서 이 친구의 친구에게서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전화로 얘기할 땐 로드바이크는 아니더래도 바퀴 큰 놈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니, 가서 제 앞을 기다리고 있던 건 낡은 미니벨로 두 대(...)

고속 버스, 기차와 같은 교통 수단을 병행할 경우엔 미니벨로도 좋은 선택입니다만 장거리를 자전거로만 다닐 생각이라면 미니벨로는 관두시는 게 좋습니다. 엉덩이에 종기나기 싫다면 좋은 안장도 필요해요. 아 힘들었다...

자전거 뒤쪽의 짐받이도 추천합니다. 가방을 매고 타는 것보다 뒤에 묶어놓는게 훨 나아요. 자물쇠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타지에서 자전거 도난당하면 정말 기분 뭐할 거에요.

밤에도 달릴 거라면 자전거 전등을 필수로 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어둑어둑해질 즈음엔 달리지 말고 찜질방에 들어가 쉬세요. 15분 남짓 달린 결과, 스릴이 넘치안 달리는게 무병장수의 지름길입니다.

지옥의 언덕



2. 수리도구

바퀴의 펑크 때우는 법을 알고 때우는 장비를 가져가시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타고 간 자전거가 미니벨로라서 그런지 몰라도 하루에 한 번 꼴로 펑크가 났었죠. 물론 수리도구 따위는 없었습니다. 전체 코스의 반은 걸어간 느낌.

도로 한복판이나 시골에서 변을 당하면 큰 동네가 나올 때까지 걸어야 합니다. 가구공장 한복판에 자전거 수리점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게 절대 아니니까요. 카센터나 오토바이 매장에서도 구멍을 때워주긴 합니다만. 한 번은 경찰차까지 불렀어요.

구멍을 못 때운다면 자전거를 타는 여행이 아니라 끌고 다니는 여행이 되어버립니다. 돈도 많이 들고 말예요.

...사실 출발하기 전 날에도 자전거를 빌리자마자 구멍이 났었죠.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으허어허엏허ㅓㅎ으헣



3. 물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죠. 물과 소금 캡슐을 들고가거나 스포츠 음료를 챙기세요. 그때그때 사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항상 충분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한 번은 땡볕이 내리쬐는 산을 올라갈 때 마침 물이 없어서 죽을 맛이었어요.

수분 보충중



4. 모자, 선크림

여름에 하는 여행은 더위와의 전쟁. 도로에는, 심지어 산을 올라가는 도로에도 나무 그늘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모자라도 없었으면 얼굴까지 홀랑 탔겠죠.

모자는 역시 챙이 넓고 끈이 달린 낚시모자가 좋아요. 밀짚모자는 챙이 너무 넓고 단단하다 보니 산을 빠른 속도로 내려갈 때 제 목을 한껏 조르더군요.

그리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선크림을 수시로 발라줘야 합니다. 전 이걸 소홀히했다가 샌들과 옷 모양으로 전신에 빨간 무늬가 생겼죠. 다리에는 스타킹 모양이 따라서 신발 역시 운동화를 신거나 샌들이라도 양말을 신는 걸 추천합니다.

고무신 신지 마시구요



5. 간식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먹을 간식은 항시 챙기세요. 자유시간, 핫뷁, 양갱 등등. 그 중에서도 최고는 양갱이라고 하더군요. 제 경우는 힘도 없는데 주위에 식당도 없어 느릿느릿 달리다, 결국 친구에게 바득바득 화를 내는 증상을 겪었습니다.

하얗게 불태웠어...



6. 우비

비오는 날에도 시원하게 달리고 싶다면 역시 우비.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단 자전거에 녹이 슬 수 있으니 주의하시구요. 우리는 헌 자전거라 마음껏 달렸습니다.

탈출...은 불가능



7. 지도

정해진 코스에 맞춰 길을 따라 여행할 거라면 대축척 지도를. 대충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갈 거라면 전국지도라도 괜찮습니다. 우린 처음엔 아무것도 없이 표지판을 보거나 길을 물어보면서 가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중간에 문방구점에 들어가 전국지도를 하나 샀죠.

코스도 중요한데요, 큰 산맥은 피해서 가는 게 골병들지 않는 방법이겠죠. 제 경우는 청주에서 공주, 논산을 거쳐 광주 쪽으로 내려와 부산 쪽으로 갔답니다. 사실 목적지만 정해놓고 코스는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을 거친 거에요.

여긴 누구 나는 어디



8. 여유

하루에 너무 많은 거리를 달리려 하지 마시고, 풍경이나 지역의 볼거리를 느긋하게 즐기세요. 저는 사정상 7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빠듯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구경했죠. 그리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구요. 도시별로 특색이 있는 것도 재밌었네요. 다만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래 사진의 계곡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곳입니다. 정읍에서 광주로 가는 도중 표지판의 계곡이라는 글자를 보고 잠깐 그 쪽으로 빠진 거죠. 그런데 여기 어느 계곡이었을까요.

으악 시원하다



9. 모기주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아래의 몰골로 노숙하고 싶지 않다면 모기를 쫓을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가는 게 좋을 겁니다. 몸에 바르는 모기약이 쓸모있을까요? 아, 모기향은 소용없어요. 저 때 모기향으로 거의 AT필드결계를 만들어 놨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더군요.

파라오...?



10.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엔 자전거 여행을 못 갈 듯 해서 아쉬운 마음에 대충 생각나는 걸 써 봤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뭐 그렇다고 해서 저희처럼 대충 출발하지도 마시구요. 한 번쯤은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떠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힘들어서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많았고 '다시는 안 가!'라고 바로 한 달 전까지도 주장하고 다녔는데, 갑자기 다시 떠나고 싶네요. 틀림없이 '내가 왜 이 여행을 가자고 했을까'라고 후회할 걸 알면서요. 역시 여행은 고생을 좀 해야 기억에 잘 남는 걸까요.

"저기 아저씨 사진좀 찍어주세요"

Posted by _j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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