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밤



누가 제일 먼저 일어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사히 제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행운이 일어나 줄지, '언젠가 알람시계를 사야겠다'는 생각조차 쥐꼬리만큼도 안 하면서 우리는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피곤해서 기내식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잤어요. 고2때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들떴던 것을 생각하면 경이로운 일이지요.

델리에 도착하니 뭔가 서류 비슷한 걸 작성해야 한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을 뚫고 겨우 종이를 얻어서 써내려가는데 주소를 쓰는 란에서 막혔습니다. 여행자인 우리가 주소는 무슨 주소. 대충 도시 이름이나 숙소 이름을 적어서 내니 통과.


첫 날 우리에게 델리를 구경시켜주겠다는 K군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항 유리벽 밖에서 관광객을 노리는 매의 눈빛을 보고 식겁했습니다. 유리벽에 바짝 붙어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공포스러운 모습에 눈 마주치기조차 겁나더군요.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고 그 분들이 제안한 호텔로 갑니다. 거리가 엄청나게 혼잡하고 차선 개념이 없는지 자리만 나면 끼어드네요. 그러면서도 충돌사고는 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공항 근처의 엄청나게 비싼 호텔. 그 분들 의견은 하루동안 여기서 푹 쉬고 다음날 자신들과 같이 택시를 하루동안 빌려 돌자는 거였죠. 근데 우리는 가난한 학생이라 관광지 주변에 숙소를 잡고 걸어다닐 계획이었습니다만 이미 호텔 체크인은 끝나고. 비용적으로 부담을 느낀 우리들은 허나 거절한다그 분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이 때 커리를 처음으로 먹어봤는데요, 한국 카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 맛이 없다는 점이더군요. 태국에서 먹은 음식보다는 먹을 만 했지만 맛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점점 내일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컵라면을 먹으려고 프론트에 boiled water를 주문했는데, 뜨거운 물이 아닌 따뜻한 물을 주더군요. 그래서 라면을 불려먹어야 했습니다.


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을 세심히 가려줍니다. 바삭한 라면을 먹는 K.



이튿날은 호텔 식당에서 카레와 난, 짜파티를 먹었습니다. 이것들은 밥 대신 먹는 빵인데, 난은 반죽을 발효시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문할 때 종류별로 다 먹어보려다 양 계산을 잘못해서 또 음식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맛은 있었지만.


짜파티, 플레인 난, 갈릭 난, 버터 난. 그리고 커리 둘.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빠하르간지에 도착했습니다. 빠하르간지는 뉴 델리 역 앞에 위치한 시장 골목인데요, 차도 사람도 많아 공기도 안 좋고 엄청나게 북적거립니다. 게다가 무질서하고 전방에 사람만 보이면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 탓에 처음엔 길을 건너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main street을 찾다가 왠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사람에게 속아서 오토릭샤를 타고 여행자 센터까지 가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인도의 첫 인상은 완전 꽝이었어요.


맨 앞의 귀여운 삼륜차가 오토릭샤입니다.



오토릭샤는 미니 택시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거의 우리의 주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이 차에는 미터기가 달려있긴 하지만 무용지물. 값은 항상 출발 전 흥정에 의해서 결정되는데요, 처음엔 힘들고 정신없는 와중에 흥정까지 하려니까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요. K군이 많이 수고했죠.

게스트 하우스(물론 이름만은 호텔입니다만...)를 잡고 처음으로 간 곳은 라즈 가트입니다. 간디의 화장터가 있는 큰 공원인데, 엄청 넓어서 돌아다니는 데 고생 꽤나했습니다. 그래도 차가 없어서 도로변보단 공기가 확실히 좋은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도로변만 나오면... 어휴.



다음은 걸어서 Red Fort(붉은 성)에 도착. 걸어가는 것보단 오토릭샤를 타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왜 걸으려고 했는지. 그 땐 정말 힘들어서 싸움날 뻔했죠. 역시 힘들게 여행다니면 꼭 싸움이 나게 되어 있다니까요. 히히.






그 다음은 찬드니 촉. 여기도 시장 골목인데, 역시 땅이 넓은 나라다 보니 시장도 장난 아니게 큽니다.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때우고, 구경하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말 한국하고는 길 잃는 레벨이 틀려요. 가까스로 큰길로 나가 오토릭샤를 발견,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성적을 확인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맥주를 샀습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입니다.


Posted by _j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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