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를 이성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야 아무것도 몰랐을 때니 재끼고, 중고등학교 땐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남고에 다녀서 이성을 만나볼 기회조차 없었다. 대학교 와서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OT때 만난 사람이 죄다 남자였다. 원래 초기엔 OT조끼리 몰려다니지 않는가. 원래 우리 조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으나 이미 남자친구가 있어서인지 OT를 불참하고선 영영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보통 대학생은 과(학생회)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난 과 활동은 귀찮다는 이유로 생각도 않았고, 어느 동아리에 들어서 활동했다. 동기들 중에 여자가 좀 있긴 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쉽게 싹트는 게 아닌지, 1년 이상을 동고동락했던 동기는 그냥 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연하다.

남자 동기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애초에 여자친구를 사귀려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는 (지금은 헤어졌지만) 여자친구를 사귀긴 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이 하려고 해서 되는 건가? 그냥 같은 집단의 여자사람친구 중 좀 마음에 드는 하나에게 '야 우리 사귀자' 말해서 승낙을 받으면 그 때부터 '사람'을 뗀 여자친구가 되고 그 때부터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이 사랑인가? 내가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난 평생 여자친구를 못 만들거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겠으니까.

친구들은 누군가 여자친구를 사귀었단 얘길 듣고선 '제길 난 왜 여친이 없는거야' 하고 좌절한다. 나도 그 자리에서는 같이 좌절하고 웃지만 사실 '어 그렇구나' 말고는 별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애인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상대가 지금까지 없었다면 애인이 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짝을 만들려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친구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면서 사창가도 가끔 들른다. 고등학생 때부터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사실을 고3시절 알았는데 좀 충격을 받았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친구였는데. 사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사랑의 결실은 종족 번식에 있으니 성적 욕구가 곧 사랑일까? 글쎼, 이 친구를 질책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좀 많이 다르다.

내가 음악과 방송에서 질리도록 나오는 사랑의 이미지에 현혹된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는 이렇다. 친구 사이로 지내다가 어떤 것을 계기로(직접 겪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조건이 불명확하다) 사랑의 감정에 빠져서 애인이 되는 것. 만약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거부하지는 않겠다만 느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생은 기니까 아직 기회는 많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못 느낄 것 같다. 사람은 솔로생활이 길어지면 연애세포가 죽는다는데, 내가 그런 상태일지도. 나를 좋아해 줄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격이나 외모나 그리 비호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니까.

UMC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듣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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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j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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