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컴퓨터 잘 하고 그림 잘 그리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친구로 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내가 세상 어느 곳이나 굴러다니는 흔해빠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된 후로는 칭찬을 들어도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스개로 넘겨버리게 된다.

일단 공부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난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서 하라니까 하지만, 전교 탑 텐 안에 들어야겠다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공부는 학교에서'가 내 학창시절 모토였을 정도로, 수업시간에만 열심히 듣고 집에서는 철저히 내 하고 싶은 걸 했다. 고등학교 때야 야자를 하니까 그나마 공부 시간이 늘었지만 주위 사람들에 비해서 열심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야자 후 밤에 게임하느라 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수업시간에 본격적으로 졸기 시작했다. "넌 맨날 나랑 같이 잤는데 왜 성적이 나보다 좋은거냐." "쟤는 공부를 하긴 하는데 고2때 고1처럼, 고3때 고2처럼 공부하는 게 문제야."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면, 노력이란 걸 더 해봤다면 지금의 나는 더 좋은 학교를 갔겠지. 하지만 지나간 시절에 대한 후회 따위 할 마음은 없다. 아마 시간을 돌려서 다시 학생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 때와 똑같이 놀 만큼 놀고 나사빠진 생활을 했을 것이다. 멍청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절대로 못 할 일이니까.

그림 잘 그리고 컴퓨터를 잘 한다. 내가 이런 소리를 친구들한테 들었다니, 정말 내 주위에는 능력자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물론 주위 사람보다 잘 하기야 했겠지. 하지만 세상엔 나와 내 주위 사람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인터넷에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상상도 못 할 스토리를 짜고 혼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만화 작가들,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 수많은 요리 블로거들. 수학, 과학, 기계, 사회, 정치, 역사, 밀리터리, 그 외 각종 '덕후'들.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 난 어느 분야든 나보다 많이 알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볼 때면 열등감과 함께 존경심을 느낀다. 난 천재도 수재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이지만 되도록 많이 알고 싶고 되도록 많은 것을 하고싶다. 마음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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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j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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